눈으로 즐겨요/영화관

복수혈전 - 이경규, 인생의 복수혈전에 성공하길

lainy 2007. 1. 28. 04:51


영화 복수혈전은 1992년 당시(물론, 지금도) 인기 개그맨이었던 이경규씨가 야심차게 각본, 감독, 주연을 맡았던 액션영화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여서 굳이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망한 것으로 유명한 영화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른다.

대충의 줄거리는 이렇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의형제인 태영과 준석, 그 중 디스코텍을 운영하는 태영은 어느날 찾아온 조직에게서 마약거래장소로 디스코텍을 이용할 것을 제안 받지만 거절하게 된다. 이에 조직은 태영을 습격해 마약을 주사하고 경찰에 밀고해서 구속시킨다. 출감 후 이들 의형제는 복수를 다짐하고..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스토리는 굳이 흠잡을 데 없지만(그렇다고 빼어나거나 특출나지만도 않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망했다. 그리고 그 후 14년 동안이나 여러 개그프로그램의 단골 소재로 놀림받아왔고, '망한영화'의 고유명사격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개그맨이라 불리는 이경규씨의 인생에도 씻을 수 없는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고 냉정하며 정확하다. 영화가 흥행에 참패했다는 것은 여러가지를 의미하지만 적어도 액션 영화가 망한 경우, 그 이유는 뻔하다.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가 재미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제작 감독 주연까지 맡았던 영화초보 이경규의 과욕이 앞섰기 때문이 아닐까. 제작 감독 주연 중 하나만 맡는 좀 우회하는 전략을 썼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아쉬움이 남는건, 이 영화를 '망했다고' 혹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지 않고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 얘기를 한다는데 있다. 혹시 아는가? 영화를 직접 보면 내 생애 최고의 영화가 될지? 물론, 대다수 사람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란게 존재하기는 하겠지만-_-;;가끔 타인의 혹은 자신의 취향이란 알 수 없으니..

또 한가지 이유는, 영화의 흥행 참패와 함께 이경규의 도전정신까지도 묻혀버린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32살 한창 개그계에서 잘나갈 때 돌연 영화계로의 진출을 선언했다. 지금처럼 멀티테이너가 활발한 시대에서도 '개그계->영화계'로의 진출은 쉽지 않다. 또한 지금처럼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가 크지도 않던 시기에 개그맨의 영화진출로 영화인들의 싸늘한 시선을 감당해내야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영화계에 혈혈 단신으로 뛰어든 그의 도전정신은 높이살만하다.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 다만, 너무나도 무모하게 덤벼든 것이 패착이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07년, 영화 '복수혈전'은 망했지만, 그의 영화인생에 있어서의 '복수혈전'은 이제 막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겨울 개봉을 기다리는 '복면달호'라는 영화ㅡㄹ 통해. 하지만 영화 '복면달호' 전면에 걸쳐 그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속 인물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감독을 맡는 것도 아니다. 다만, 포스터 한쪽 구석 저편에 '제작 이경규'라는 글자 속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14년 전 쓰라린 실패 속에서 배운 것을 잊지 않은 것이다.

'복면달호'의 무대인사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는데 14년이나 걸렸다'고. 14년 동안 '복수혈전'이라는 영화가 그에게 남긴 상처는 대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복수혈전으로 그를 비웃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외친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오점을 남겼던 그길을 다시 한 번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시장의 평가는 냉정할 것이다. 더군다나 코미디 영화인 만큼, 이 영화 역시 재미가 없다면 흥행에 참패할 것이고 이경규는 더이상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만큼 나는 이 영화가 재미있게 만들어진 영화이길 바라고 흥행에 성공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훗날 남들이 보기에 무모한 일에 도전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